물속에서

진은영


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
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로 흘러갈 때까지
잠시 떨고 있는 일
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
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
물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
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
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
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
(그런 일이 너무 춥고 지루할 때
내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볼까?)

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
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
점점 부풀어 오르게
잠이 잠처럼 풀리고
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
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
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
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

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걸 잠시 잊어버리는 일


* tirol's thought
나는 수영을 못한다. 물이 무섭다.

하지만 시 속의 화자처럼
물속에서 가만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
할 수 있을 것도 같다.

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고, 물의 색도 바뀌지 않는다.
세상의 많은 일들처럼.
그냥 잠이 잠처럼, 집이 집처럼, 바다가 바다처럼
그렇게 와서 그렇게 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
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지도 모른다.

내가 모르는 것으로 흘러와
내가 아는 것으로 흘러가는 시간을
고요히 바라본다.
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.


2012/05/08 19:07 2012/05/08 19:07
하늘의 밥상

이산하


아이들이 어지럽게
흘린 밥알처럼
내 삶도 저렇게
밥그릇을 떠나
자유로웠으면......

하늘의 밥상이여
내 피만으로
한 상 차렸구나

* source: http://goo.gl/DUmhD

* tirol's thought

밥그릇을 떠나 살 수 있을까?
밥알을 흘리는 아이들이나 가능한 일일까?
2012/03/09 07:38 2012/03/09 07:38

구두 - 조성규

시 읽어주는 남자 | 2012/03/06 13:04 | tirol
구두


비가 오기 전엔
몰랐다

바닥이 갈라지도록
매일 허리 굽히며 살아온
구두의 세월

골 깊은 주름처럼
패이고 갈라진
너의 상처

발바닥에
눈물이 스민다
2012/03/06 13:04 2012/03/06 13:04